우리는 질문을 믿음의 반대편에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싶기에 묻고, 우리가 믿는 것을 삶으로 살아 내고 싶기에 질문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말씀과 쉽게 풀리지 않는 삶의 문제 앞에서, 아는 척하기보다 정직하게 묻는 것이 믿음의 걸음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믿음의 여정에는 의문과 회의의 시간이 있습니다. 익숙했던 설명이 충분하지 않게 느껴지고, 오래 믿어 온 고백을 자신의 언어로 다시 붙들어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시간을 이유로 사람의 믿음을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습니다. 질문을 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과정에서 믿음은 더욱 깊어지고 단단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는 질문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에도 다시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와 대화하시며 거듭남과 성령의 역사,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임마누엘교회도 질문하는 사람이 머물 수 있고,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다시 물을 수 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질문에 담대한 이유는 진리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진리를 다 알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함께 서야 할 견고한 토대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깊이 살피고, 말씀의 문맥을 묻고, 우리의 생각과 관습을 말씀 앞에서 다시 검토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질문은 진리에서 멀어지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진리를 더욱 깊이 알아 가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합니다. 성령께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며 묻고 성실하게 배웁니다. 우리의 첫 생각이나 강한 확신이 언제나 옳다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말씀으로 살피고, 공동체의 지혜에 귀 기울이며, 잘못 알았던 것을 고치고, 아직 풀리지 않은 질문 앞에서는 인내하는 법도 배워 갑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회개를 이루어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든 의문이나 불안 자체가 성장을 보장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과 삶을 정직하게 살피고 돌이키는 근심을 소중히 여깁니다. 불편한 질문을 서둘러 덮기보다, 그 질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무엇을 바로잡고 새롭게 하시는지 함께 살피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질문하는 사람을 정죄하지 않고, 대답하는 사람도 존중합니다. 서로를 시험하거나 이기기 위해 묻지 않고,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 그 뜻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지도자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며, 배우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기꺼이 수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가 진리 안에서 자라기를 바란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랑과 겸손으로 대화합니다.

특히 다음 세대가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신자가 담배를 피워도 되나요?”라는 일상의 질문부터, 하나님과 고통, 성경과 과학, 신앙과 사회에 관한 깊은 질문까지 자신의 언어로 꺼낼 수 있어야 합니다. 작은 질문조차 말할 수 없는 자리에서는 마음 깊은 고민도 나누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질문의 수준을 평가하기 전에, 그 질문을 꺼낸 사람의 마음과 삶에 귀 기울입니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질문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빠르고 유창한 답을 얻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왜 묻는지, 어떤 근거로 답을 판단하는지, 그 답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삶으로 이어지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임마누엘교회는 주어진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머물지 않고, 말씀에 비추어 생각하고 분별하며 책임 있게 응답하는 그리스도인을 세우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질문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서로의 삶을 이해하며, 믿음을 삶의 자리로 이어 갑니다. 진리를 신뢰하기에 담대하게 묻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믿기에 겸손하게 배우며, 서로를 사랑하기에 함께 답을 찾아갑니다. 질문에 열려 있고, 말씀 위에 서 있으며, 사랑 안에서 함께 자라는 공동체, 그것이 우리가 질문하는 교회가 되려는 이유입니다.